천연기념물의 보고,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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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의 보고, 마라도
  • 관리자
  • 승인 2009.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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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망한 푸른 파도, 끝없이 밀려드는 바람 위 드넓게 펼쳐진 해안선, 발자국은 더 이상 찍어댈 곳이 없다. 최남단, 국토의 끝이다. 바람도, 공기도, 물도, 하늘을 나는 갈매기도 그리고 사람도 하나같이 해풍에 녹초가 되어 그 크기조차 웅크리고 있는 듯 작게만 느껴지는 땅, 엄연히 존재하는 지상 좌표에 대한민국 국토 영역 안의 마라도는 그렇게 풍상을 겪어가면서도 비켜 지나갈 수 없는 역사 속에서 아름다운 마지막 해안선을 그려놓고 있다.



0.3㎢의 작은 면적, 70 여명의 주민이 전부인 곳. 주민들도 대개는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상인들, 혹은 노인뿐이다. 해안선 길이 4.2㎞이며, 최고점 39m이다. 모슬포 항에서 남쪽으로 11km 해상에 있으며, 가끔 드러나는 이어도를 국토 영역에 넣지 않는다면 최남단이다. 원래는 가파리(加波里)에 속하였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인해 1981년 4월 1일 마라리로 분리되었다. 섬 전체 형태는 길쭉한 고구마 모양이다. 오랜 해풍의 영향으로 해안에 도드라지는 기암절벽은 가히 비경이다. 원래는 산림이 울창하였지만 1883년 영세농어민 4∼5세대가 당시 제주 목사로부터 개간 허가를 얻어 화전을 시작하였는데 이주민 중 한 명이 달밤에 퉁소를 불다가 뱀들이 몰려들자 불을 질러 숲을 모두 태워버린 탓에 겨우 자라나기 시작한 여린 나무(木)뿐이다.



주민들은 전복·소라·톳·미역 등을 채취한다. 용천수가 나지 않아 집집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모았다가 여과시켜 가정용수로 사용하며, 태양광을 이용한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는다. 액막이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할망당’을 섬기며, 남쪽에는 한국에서 최남단 지역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등대는 191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라도 선착장 근처의 바위는 모조리 검은 색이다.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하얀 파도에 멍든 탓이다. 파도소리는 마치 모진 매질에 기함하는 비명소리를 머금고 있어, 바위를 내려치는 위력이 얼마큼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선착장에 내려서자마자 가파른 계단이 하늘 길로 높다랗다. 마라도에는 자장면 집이 유난히 많다. 육지에서 이송하기에는 음식 재료가 단순한 자장면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모슬포에서 마라도까지 용이하지 않는 운송수단도 문제지만 자장면은 단무지 정도면 밑반찬이 되기 때문이다. 자장면은 마라도에서 나는 각종 해물을 많이 첨가하여 육지의 자장면과는 좀 다르다. 마라도와 자장면, 다소 이색적이라서 그런지 대개의 관광객들은 자장면 한 그릇은 필수다.



마라도는 천천히 걸어서 도보로 2시간 정도면 섬 전체를 돌 수 있다. 선착장에 내려서 우선 왼쪽으로 돌다보면 작은 분교가 나오는데, 전체 학생이 겨우 2명뿐이다. 교정의 크기도 아담한 곳이 마치 작은 항아리 안에 다 담겨버릴 듯 소작(小作)하게, 혹은 무심한 듯 그렇게 바람을 막고 있다. 그 뒤로 해풍을 맞고 서 있는 선인장 탐방로, 그 가운데 국토의 최남단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때로는 가슴 벅차게, 더러는 꼭지점에 닿은 알 수 없는 정복(?)감과 허탈함에 잠시 발길을 붙든다. 대개 마라도 관광객들은 이 자리에서 기념 촬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마라도의 교통수단은 자전거나, 골프장에서 사용되는 전동차가 전부다. 자전거나 전동차로 돌아보는 것은 고작 30여분 내외이다. 보도블록 위를 달리는 전동차는 대개는 인근에 자장면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1인 3,000 정도에 대여하게 된다.



마라도에도 성당, 절, 교회가 있다. 하지만 성당엔 사제가 없고, 사찰엔 스님이 없으며, 교회엔 목사님이 없다. 한창 번성기 때는 모두 주석하셨지만 이제는 그 형체의 안온만이 존재할 뿐이다. 바람을 맞고 한참 몇 걸음 더 돌다보면 소나무 군락과 왼편으로 넘어선 등대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태양광 발전소 등이 섬의 조화로운 풍경과 더불어 하나의 물상을 토해낸다.


무망한 바다해안을 바라보면서 잠시 마라도가 진정 대한민국의 최남단일까? 하는 무심한 생각을 한다. 파랑섬, 이어도가 국토의 최남단, 바다 속으로 들어간 섬 이어도는 우리 국토에 어떤 항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상상의 섬, 제주 여인에게 이어도는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깃든 곳, 자신들도 결국 그들을 따라 떠나게 될 곳으로 굳게 믿는 환상의 섬으로 여겼다. 살아서 되돌아오지 못하지만 사시사철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섬이라 여겨지던 이어도는 이승의 삶이 지겹도록 고달플 때 편히 쉴 수 있는 저편의 섬이었다. 이어도는 죽음의 섬이면서 한편으론 구원의 섬이기도 했다.



이어도와 마라도, 상상과 실존의 섬. 그 가운데 우리 국토의 마지막 염원이 깃든 해안선 핸드폰으로 기록한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언젠가는 시간의 굴레를 회전시켜 마라도는 바다 속에서 이어도와 함께 국토의 마지막을 증언할 것이다.


육상식물은 모두 파괴되어 경작지나 초지로 변해 버렸고, 섬의 중앙부에 해송이 심어진 숲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해산식물은 매우 풍부하여, 해조류의 경우 난대성 해조류가 잘 보존되어 제주도나 육지 연안과는 매우 다른 식생을 나타낸다. 녹조류·갈조류·홍조류 등 총 72종이 자라고 있다. 해산동물의 경우 해면동물 6종·이매패류 8종·갑각류 4종 등의 한국 미기록 종이 발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이다. 천연보호구역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난대성 해양 동식물이 가장 두드러지고 많은 한국 미기록 종과 신종생물이 발견된 심비의 섬. 제주도가 유네스코 지정 자연유산을 다량 보유하고 있듯이 언젠가는 대한민국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에서 세계자연유산 보고로 세계인이 하나 되는 자랑스러운 그 위상을 점화하게 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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