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匠人] 전흥수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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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匠人] 전흥수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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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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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은 유난히 목수가 많은 지역이다. 수덕사라는 천년고찰이 전국의 목수를 모았으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이곳 출신 대목장이 많다. 또한 수덕사 근처에 가면 한국의 국보와 보물 목조건축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한 명의 장인 정신이 전국 목조건축물을 한자리로 불러 모았다. 바로 ‘한국고건축박물관’이다.


국내 유일의 한국 고건축 관련 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전흥수 대목장이 만들었다.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국보와 보물들을 정밀하게 모형 축소하여 그 형태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여, 역사 깊은 건축물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물은 부석사 무량수전, 무위사 극락전, 숭례문 등 국보급 축소 모형물과 소품 200여점, 그리고 목조건축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공포, 귀포, 대들보, 기와, 문짝, 연장 등 다양하다.


한국고건축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한국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우리만의 전통 정신과 철학이 느껴진다.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시대의 목조건물들이 때로는 서로 뽐내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그 중 눈에 띄는 작품은 화마로 없어진 숭례문의 모형이다. 그 앞을 지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우리의 전통 목조문화가 만들어낸 조화의 세계. 이 조화의 세계를 창조한 장인 전흥수를 만나 그의 장인정신에 대해 들어보기로 한다.



Q : 목수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우리 아버님이 수덕사에서 일을 하셨어요. 가까운데 사셨고요. 그러다가 김덕희씨 동생 김중희씨 아래서 목수 일을 배우게 되었어요. 그 분들이 원래 경상도 분들이신데 수덕사 밑에서 사셨어요. 형인 김덕희씨는 부산으로 내려가시고, 동생 분은 수덕사 밑에 좁은 가게가 있었어요, 거기서 오래계시다 서울로 올라가셨어요. 예산, 서산 일대의 목수들은 다 그 분 밑에서 배우신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목수가 많아요.
처음에는 말도 못하게 어려웠죠. 나도 목수 일을 하려고 해서 한 것이 아니고 내가 9남매인데 가정이 너무 어려우니까, 그때는 먹고살려고 이일을 시작했지, 이일을 해서 박물관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죠.

Q : 처음 목수 일을 하실 때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옛날에는 일을 안 가르쳐줬어요. 만들어 놓으면 그날 저녁에 가야지... 지금은 안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남이 쉬 때도 안 쉬고 선생님이 만들어 놓으면 가서 보고, 자로 재보고, 어떻게 만들었나, 훔쳐보는 거죠. 그렇게 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온거죠.
절에 가서도 있었어요. 도저히 목수 못할 것 같아서... 결국 절 생활도 못하고, 또 서울 가서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어린나이에 별짓을 다해봤어요. 그러면서 느낀 것 목수 일을 해야겠구나 였어요.

Q :목수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내가 난지방에서 일을 많이 했어요. 북한산 꼭대기도 했고, 과천 관악산, 울산. 한 여섯 군데 정도 제일 못할 곳에서 했어요. 헬기로 자재를 날르기도 하고 해서 난공사를 많이 했어요. 그런 게 바탕이 되어서 웬만한 일은 무섭지 않죠.
우리가 어렵게 지은 집은 기억이 많이 나요. 어렵게 했기 때문에 애착이 많이 가고요. 헬기로 나무 내리는데 잘못 내리면 나무가 부러지거나 하는데, 그러면 다시 내려야 되고요... 애를 많이 썼어요.


Q :고건축박물관을 하시면서 어려우신 점은 어떤 것인가요?

여기와서 고건축박물관 짓느라고 130억을 썼어요. 그것 짓는 기간이 있잖아요. 또 그 기간동안 다른 데 일을 못했어요. 그러니까 일이 끊어지니까 어렵고, 돈은 계속 써지고, 그러니까 소외라기보다는 경제적 고통을 조금 받고 있어요.

Q :앞으로 선생님께서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인가요?

나는 누가 보면 욕심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크게 욕심이 없어요. 욕심이 있다면 이 박물관을 짓지 않았을 거예요. 박물관한다고 돈이 생깁니까? 지을 돈으로 먹고 살지요. 내가 평생을 해왔고, 우리나라에 고건축박물관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 하나 남겨두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한 것이죠.


Q :숭례문 복원의 방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제일 챙겨야 될 부분이, 중요무형문화재라고하면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교장노릇을 하고 총장노릇을 해야 되는데,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그것이 제일 안타깝고... 나 아니면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을 못 하는 거예요. 숭례문은 중요무형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들 다 지을 수 있어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거기에 나 아니면 못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에요. 돈도 떠나서, 자기만 잘한다는 것도 버리고, 욕심 다 버리고 숭례문이 잘 복원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이 집도 잘 짓고 화합도 잘 한다”라는 얘기를 듣고, 중요문화재가 본받을 사람들이다 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내가 하는 얘기는 화합을 하자는 거예요. “대목장 세 분이 화합을 하니까 집도 잘 지어지고 분위기도 좋다.” 이렇게 보일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된다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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