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제 신발 출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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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제 신발 출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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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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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덕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제 신발 (좌, X선 촬영 모습)



전북 고창 봉덕리의 고분에서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마한의 정치세력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됐다.



원광대학교 마한ㆍ백제문화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4개월에 걸쳐 봉덕리 1호분을 발굴 조사한 결과, 한성 백제기의 마한문화 전통을 가진 분구묘(봉분이 있는 무덤)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4호 석실분에서는 국내에서 출토된 것 가운데 가장 보존상태가 양호한 금동제 신발을 비롯해 국내 최초로 발견된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 칠기로 만든 화살통 등 각종 유물이 쏟아져 나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4호 석실분 유물 출토 상태



이번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봉덕리 1호분은 길이 72m, 너비 50m, 높이 7m 정도의 규모로, 상부에는 석실분 5기와 옹관묘 2기를 안치하고 있다. 이 중 4호 석실분은 다른 석실분이 굴식(橫穴式)인 것과는 달리 구덩식(竪穴式)으로 분구의 동남편에 치우쳐 자리하고 있는데, 시신이 안치되었을 중앙에는 머리부분에서 청동제 대나무잎 모양의 장식(竹葉形頭飾)이, 머리와 가슴부분에서 귀걸이(耳飾) 2쌍과 곡옥 2점을 비롯한 다량의 옥이 발견되어 합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 금동제 신발 출토 상태



금동제 신발은 발치 쪽에서 약간 비스듬히 뉘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우측 신발 내부에는 뼈가 남아 있었고, 좌측에는 직물류 흔적이 발견되었다. 신발 바닥에는 18개의 스파이크 모양의 징을 부착했는데 부착지점에는 6엽의 화판이 장식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용 한 마리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발뒤꿈치 부분에는 고구려(장천 1호분) 고분벽화나 무령왕릉 과대 장식에 보이는 역사상(力士像)이 투조되어 있으며, 여백의 공간에도 봉황 등의 길상조(吉祥鳥)가 투조로 장식되어 있다.



남벽 중앙에서는 소호장식유공광구호(小壺裝飾有孔廣口壺)가 국내 최초로 발견되었다. 이 토기는 일본 고분시대의 토기인 스에끼(須惠器)에서 장식호(子持壺)라 불리는데, 이번 고창에서 출토된 것은 이들 토기의 원류로서 한일 고대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그릇받침(器臺)의 하부에는 토제 구슬을 넣고 막은 형식으로 제작되어 방울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으며, 제의 의식에 사용된 토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 청자반구호 및 소호장식유공광구호



이 밖에도 시신 자리의 팔 부분에는 칠기로 만든 화살통, 대도(大刀) 2점과 손칼(刀子)이 놓여져 있었으며, 동남 모서리에는 중국제 청자와 호가, 그리고 북벽에는 성시구와 등자를 비롯한 마구류와 철제 무기류가 각각 놓여져 있었다. 대도 1점은 칼자루와 칼집이, 손칼은 손잡이가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자루 장식은 규두(圭頭)로 추측되며 소호장식유공광구호와 더불어 한일 고대문화 교류의 증거가 되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봉덕리 1호분 주변에는 마한 분구묘 계통의 분묘가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이번에 출토된 유물을 통해 볼 때,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마한의 상당한 정치세력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마한문화의 단면을 새롭게 규명할 수 있는 계기이자 백제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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