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인가? 폐가인가?' 맹씨행단 관리부실로 폐가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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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인가? 폐가인가?' 맹씨행단 관리부실로 폐가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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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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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의 맹씨행단은 1963년 1월 21일 일찍이 사적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7,125㎡이다. 고택과 가묘(家廟)로 나누어 관리 되고 있다. 고택은 ㄷ자형 전형적인 맞배집의 형태를 띠고 있다. 건축면적 93㎡이며, 지붕 위의 공포(栱包)는 단익공(單翼工)에 주심첨차(柱心檐遮)가 조선 초기 양식의 전형이 잘 나타나고 있다. 가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맹사성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맹사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주변에는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도 있다.





▲ 맹씨고택



맹씨고택은 고려 말기 무신 최영이 지은 집이다. 그의 손주 사위인 맹사성의 부친 맹희도가 물려받은 후 수백 년간 대를 이어 살아오며 보존되었다. 경내에는 맹사성·황희(黃喜)·허형 등 3정승이 심었다는 행단이라는 은행나무가 있다. 또 옥피리·옥비녀·옥벼루·표주박·인장 등의 맹씨 가문 가보도 전해지고 있다.





▲ 맹씨행단 입구의 관리자 거주 건물


맹씨행단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관람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한옥 건물은 그 어느 구석에서도 고택의 품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현재 그곳에 거주하면서 맹씨행단의 관리를 맡고 있는 후손은 "관람객들이 들어다가 말고 멈칫해요. 고택과는 전혀 안 어울리니..."라면서 말끝을 흐리고 만다. 관리인이 거주하는 한옥의 상륜부 기둥은 섞고 있었으며, 고택과는 안 어울리게 이질감으로 가득해 경관을 저해할 뿐이다. 조속히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한 품격에 맞는 건축물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





▲ 맹씨고택 내부 널려있는 창호지






▲ 맹씨고택 내부 널려있는 창호지


맹씨고택의 내부는 창호지 공사를 다시 하면서 뜯겨진 창호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모습은 그 옛날 3정승의 영욕의 세월이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관리가 엉터리인 모습은 아쉽다. 공사 완료 후 주변 정리가 되지 않은 모습에 품격있는 고택의 모습은 폐가로 변형되었다. 고택 아래서 맹씨행단을 관리를 하고 있는 후손에게 물으니 "청소를 했을텐데... 올라가 확인해봐야겠네요"라며, 그제야 창호지가 널려있는 상황을 인식했다. 문화재 공사 후 정리를 하지 않고 떠난 문화재 공사업체나, 며칠이 지나도록 상황파악을 못하는 관리인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의심스럽다.





▲ 맹씨고택 내부 썩어 떨어져 있는 문짝


또한 맹씨고택의 내부 문짝은 썩어 떨어져 있다. 문짝은 관리인이 너무 썩어서 뜯었다고 하는데, 보수업체에서도 너무 썩어 이후 교체하려고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관람객이 찾는 문화재, 고려말부터 수백 년을 지켜온 고택에 썩어 떨어진 문짝이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는 현실이다. 문짝은 부식 정도는 미리 예측 가능한 사항이다. 이런 사항은 문화재에 대한 정밀검사가 아니어도 상시 관리 체계를 통해 미리 교체 또는 보수 할 수 있는 내역이다. 또한 창호지를 새롭게 바른 창호도 자세히 보면 창살이 여러군데 떨어져 나가 있다. 창호지 공사 시에 부러진 창살까지 보수 하였으면, 문화재를 두 번, 세 번 공사를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맹씨고택의 부러진 창살


방안에 널려 있는 창호지와 썩어 떨어진 문짝으로 흡사 폐가를 연상하게 하는 맹씨 고택의 주변으로는 관람객을 위한 화장실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신축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관람객이 맹씨행단을 찾는 이유는 문화재 자체를 보기 위해서다. 관람객들에게 관리가 잘된 문화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일상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여 그에 따른 점검과 관리를 하는 것이 보다 시급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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