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국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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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국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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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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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보물 제138호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鳳巖寺 智證大師 寂照塔碑)’를 국보 제315호로 승격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

국보 제315호로 지정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인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 824~882)의 탑비로 신라 경애왕 원년(924)에 세운 것이다. 이 비는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비받침은 용의 머리를 가진 거북 모양으로 거북 등 위에 비좌를 갖추고 있고 머릿돌에는 연꽃무늬와 서로 얽혀있는 여덟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특히 신라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비문은 그가 지은 대숭복사비,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호),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일찍이 그 학술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 바 있다.





▲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세 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 - 쌍봉 - 법랑 - 신행 - 준범 - 혜은 - 도헌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신라 하대의 불교 선종사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또한 탑비를 세운 연대와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최치원은 여타 전기 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과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으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아울러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신라의 왕토사상 및 사원에 토지를 기증하는 절차를 알려주고 있고,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건립의 후원자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다.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로 그 의의가 크다. 특히 이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이 비는 1,085년 전에 세워진 고비(古碑)로, 지증대사의 전기 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선종사․서예사․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갖는 탑비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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