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이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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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모이다.
  • 관리자
  • 승인 2010.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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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다 못해 꺾어져버린 강원도의 밤은 약간의 쌀쌀함으로 날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이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출렁거리는 검은 바다와 그 앞으로 줄지어선 노랗고 빨간 불빛들은 밤하늘에 별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이것이 강원도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길 기다렸다.


쌀쌀한 날씨와 함께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이 나를 자리에서 박차게 만들었다. 그러나 잠에 대한 아쉬움도 잠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바다의 환상적인 조화가 나의 눈을 번뜩이게 했다. ‘이게 진정한 자연의 화합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내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이 있었다. 바로 남북 정상을 한 곳에 모이게 한 화진포였다.






▲ 화진포


화진포는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호수로 동해 바다였던 곳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다와 격리되면서 형성되었다. 담수와 해수가 교차하는 천연의 담연호인 것이다. 게다가 호수와 백사장, 소나무 숲이 일구어낸 자연의 조화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매 겨울 백조들이 찾아오는 것도 당연지사인 것 같다. 하지만 화진포의 이런 아름다움과는 달리 그 속에 전래 내려오는 전설은 슬프기 짝이 없었다.


「어느 한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성격이 매우 고약하여 건봉사 스님이 시주를 얻으려 하자 시주대신 소똥을 던져 주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며느리는 얼른 쌀을 퍼서 스님의 뒤를 따라가 아버님의 죄를 용서해 달라했지만 이미 노한 하늘은 이화진이 살고 있는 집과 그가 소유한 논밭을 모두 폭우 속에 잠기게 했고 그것이 호수를 이루게 되었다.」






▲ 화진포 성


설화를 알고 나니 눈앞에 펼쳐진 화진포 절경이 그냥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보이지 않아 처음보다 조금 경건한 마음으로 김일성 별장을 찾았다. 일명 ‘화진포의 성’이라고 불리 우는 김일성 별장은 1937년 일본 강점기 당시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켜 독일 건축가 베버가 1938년에 예배당으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해안 절벽 위 송림 속에 우아하게 자리한 모습이 마치 성과 같다 하여 “화진포의 성”이라고 불리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김일성 별장이 된 것은 이후 1948년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해 김일성 가족들이 묵고간 후부터다.


“왜 이곳을 별장으로 선택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별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그러나 나는 계단을 오르면서 나의 의문을 모두 해결하고 말았다.


“완전 예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감탄사는 김일성 별장을 구경하는 내내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와 나의 발을 김일성 별장에 꽁꽁 묶어 놓았다. 현재 건물 안은 박물관으로 활용이 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전시된 것의 구경보다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화진포의 멋들어진 풍경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손에 있는 카메라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플 따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도 여기만큼 예뻐.”


함께 여행을 온 동료가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내게 김일성 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 별장을 갈 것을 권유했다.






▲ 이승만 대통령 별장


호수를 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화진포 산소 길을 달려 길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한 이승만 대통령 별장 앞에 섰다. 태극기의 극진한 환영을 받고 도착한 이곳은 김일성 별장만큼 화려해 보이지 않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검소한 삶이 여실이 드러나는 곳이었다.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이승만의 자작 한시였다.






▲ 이승만 대통령의 자작시


그런데 한시를 읽으면서 나의 마음에 거슬리는 구절이 있었다. 바로 “萬枝同根 百派一源 (만 가지로 나누어져도 뿌리는 같고, 백번 갈라진 물도 근원은 하나다.”이다. 이 말은 즉, 우리 민족이 갈라지더라도 뿌리는 하나이기에 같은 한 민족이라는 소리로, 국가가 둘로 나뉘어져도 괜찮다는 말을 한 것 같다. 그가 우리나라의 분단에 있어 김구와는 다르게 찬성을 했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지겹게 배워 알고 있었지만, 그의 한시를 이렇게 그의 별장까지 와서 보니 기분이 묘했다. 마치 현재 분단 현실에 나도 찬성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분명 분단의 문제가 이승만 대통령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서서 이리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괜한 반감심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화진포 기념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워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할 수 없었다.






▲ 화진포 기념관


화진포 기념관은 원래가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었으나, 1960년 철거되었다가 후에 육군관사로 지어져 사용하다 현재는 기념관으로 보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처음 이승만 대통령 별장의 복원 건물은 그저 이승만 별장이 어떻게 생겼냐를 보는 정도였다면, 기념관에서는 이승만이 실지로 별장 앞에서 보고 즐긴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함께한 동료의 말처럼 이승만 대통령 별장의 경관도 장관을 이루고 있었지만, 아까의 왠지 모를 반감심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한숨도 잠시. 기념관 앞에 놓인 「화진포 기념관의 유래」를 읽다 “이곳에서 낚시도 하고 자연을 즐기면서 남북통일을 구상하였다.”라는 구절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분단을 후회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이런 의문은 애초에 시작부터 잘 못된 것 같다. 도대체 나라가 둘로 나뉘는 것을 좋아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김구와 반대로 분단을 해야 한다 말을 한 이승만 대통령도 그 말을 하면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저 이승만 대통령은 현재의 나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최후이자 최대의 결론을 내린 것일 거고, 우리는 그저 단면적으로 보이는 결과만 보고 판단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의 오늘 같은 말도 안 되는 반감심은 교과서적인 교육방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건 아까보다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기념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단 몇걸음의 발길만에 내가 얼마나 이승만 대통령의 삶에 관심이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가 외국인이었어요?”


“아까 복원 별장 모형 봤잖아.”


맞다. 아까 복원 별장 안에 이승만 대통령과 그 부인의 실사모형이 떡하니 별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전혀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부끄러워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 기록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한 나라의 정상에 있을 때 한 일들의 자료, 한 나라의 정권을 되찾기 위해 움직인 흔적, 그리고 그가 검소하게 살려 노력했던 인생의 역사서들이 가득한 기념관 안은 숙연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영부인의 기록이 적혀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서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 앞에 써 있는 영부인 프란체스카의 기록을 읽어 나갔고, 나 또한 그곳에 머물러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이승만 부인 프란체스카


「이박사(이승만 대통령) 말년의 외로움과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을 미워하던 사람들을 향해 몸소 실천했던 그녀는 진정한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항상 “용서하라! 잊어버리라! Forgive and Forget!” 라고 말하였다.」


“Forgive and Forget..... 용서하라, 잊어버리라.”


Forgive and Forget. 남이 내게 한 일을 완전히 잊어버려라...


눈물이 왈칵 솟아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승만 대통령하면 떠올렸던 그 모든 것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미안함으로 다가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 사람(이승만 대통령)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 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을까? 왜 끝까지 나라를 둘로 나눈 나쁜 놈이라고만 생각했을까?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고, 미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고, 둘로 나뉜 현실에 괴로워 참을 수 없었다.


분명 나의 여행 목적은 둘로 나뉜 한 국가의 숨겨진 조화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연 경관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흔적이 한 자리에 모인, 화진포를 선택했다. 하지만 나의 목적성과 그 계획의 결과는 눈물로만 가득 채워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화진포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왜 이 아름다운 곳이 슬픈 전설로 가득 채워졌는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설이 왜 그런지에 대한 대답은 화진포 여행 중에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화진포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깨닫게 될 것이다. 왜 그곳이 슬픈 전설로 가득 차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곳이 왜 없는지.


슬픔의 역사가 가득한 화진포. 그곳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쩌면 그 아픈 슬픔을 가리기 위한 하늘의 장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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