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특집」고대 유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Part2.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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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특집」고대 유적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 Part2. 이탈리아
  • 관리자
  • 승인 2010.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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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아침 조간신문에 난 기사가 내 눈을 자극했다. 「이탈이아, 검투사의 집 붕괴」






▲ 붕괴된 검투사의 집


르네상스 문화를 가장 화려하게 꽃피우고, 그것을 자국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볼거리가 많은 역사의 산 교과서, 이탈리아. 이런 많은 수식어에 걸맞게 이탈리아는 현존하는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문화제의 붕괴라니... 당연히 이탈리아 정부에 책임을 묻는 비난이 끊임없이 쏟아졌고, 조르지오 대통령 역시 “폼페이(pompei) 유적 붕괴는 이탈리아의 수치”라며 해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뿐 아니라 붕괴 현장을 찾은 산드로 본디 이탈리아 문화장관이 폼페이의 다른 유적들도 붕괴 가능성이 있다 경고하여 앞으로 폼페이 유적이 어떻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실정이다.






▲ 폼페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폼페이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어부와 농부의 소공동체로 시작해 기원전 8세기경 고대 이탈리아 민족 중 오스크 족이 나라를 설립했다. 그러나 폼페이의 지형적 특성상 나폴리만과 캄파니아주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육로와 해상 무역로의 요충지이기는 했으나 수세기동안 많은 주변 강국의 침략을 받아야 했고, 결국 기원전 4세기경 폼페이를 지배하고 있던 산니타 족(기원전 5세기~기원전 310년까지 폼페이를 지배함)을 정복하고 폼페이를 부속 국가로 통합시켰다. 기원전 90년부터 약 2년간 폼페이 주민들의 반란이 있었지만 그것도 진압되어 로마가 폼페이의 마지막 정복자가 된 것이다. 만약 로마가 폼페이를 지배하며 그들을 심하게 괴롭히거나 로마인들과 차별을 두었다면 그들은 또 다시 반란을 일으켰을 꺼라 생각한다. 하지만 로마는 폼페이 시민들에게 로마시민권을 주고 자치권도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장점으로 상업과 산업의 요충지로 끊임없이 발전하던 폼페이는 로마의 부 특권층이 이주해 오면서 일반 폼페이 사람들도 그들(로마의 부 특권층)의 사치병에 전염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생산도시가 소비와 향락의 도시로 전락해 버리는 순간이 된 것이다. 급기야 폼페이는 남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다거나, 매춘 숙소가 도시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거나, 포도주 두 잔에 몸을 판다거나 하는 현재로서 상상할 수 없는 성적 타락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들의 이런 문란한 삶이 세계에서 풍광이 제일 아름답다는 폼페이를 저주의 나라로 만든 듯하다.






▲ 「폼페이 최후의 날」(1833) - 칼 파블로비치 브률로프作


그 시작이 바로 서기 62년. 평화롭던 폼페이에 갑작스런 엄청난 지진이 발생하면서 폼페이 전역은 모두 잿더미가 되어 수많은 사망자를 낳았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사는 법이라고, 생존자들의 불굴의 의지가 폼페이를 다시 살려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기 79년 8월 24일(11월 24일이라는 설도 있으나 아직은 8월이 가장 근접한 것 같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사화산 베수비오(vesuvios)가 다시 부활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역사 속 저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들이 술에 취해 외쳤던 말(“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즐기자 살아있는 한.”)처럼 그들은 그렇게 인생을 즐기다 사라졌다.


이후 저주의 도시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살아갔고, 누구의 기억 속에도 없는 폼페이가 다시 깨어나게 된 것은 18세기 초 우물을 파는 직공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발굴작업은 후세인들이 경악을 급치 못할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문화유적지가 된 것이다. 오죽하면 괴테가 “폼페이의 비극은 후세인들에게 축복이다.”라는 말을 했겠는가. 그만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 폼페이는 현재까지의 발굴 작업에서 도시의 약 40%가량 모습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많은 고고학자와 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역사 교과서가 되어주는 폼페이가 관리 소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솔직히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다.






▲ 라퀼라 지진 피해 당시 모습


예를 들어 제우스 신전 바로 옆에 있는 과거 곡물 창고로 쓰던 넓은 창고 안에 상당수의 폼페이 발굴품들이 있음에도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보관이 되어 있다거나, 혹은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거나 한 것도 전혀 없는데다가 그 안에서 발견된 유품이 아무 곳에 놓여 있어 마치 방치된 것 같다는 많은 이들의 증언이다. 게다가 나폴리 국립 박물관의 폼페이 관련 유물 전시 외에 폼페이에도 박물관을 세워 출토 유물을 전시하겠다는 이탈리아 정부의 발표가 있었음에도 아직 폼페이 박물관 건립이 되어 있지 않고 있다. 하다못해 작년 4월에 일어난 강진으로 유적지 무덤이 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피해를 본 라퀼라시는 아직도 제대로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않고 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그렇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낙천적인 성격의 이탈리아 국민들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돌아오는 12일부터 노조 파업을 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이탈리아를 가도 구경할 유적지나 문화 관광지가 없다는 소리다. 악화된 세계적인 재정 악화는 G20에서 크게 주목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되고 있지만, 우리가 과거 역사지까지 훼손하고 방치할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오늘이 바로 서울 G20 정상회의가 시작되었다. 부디 이탈리아의 고대 유물들이 우리 앞에서 사라지지 않게 각국 정상들이 우리의 악화된 재정을 바로 잡아주셨으면 한다. 다시 화산재에 우리의 유적들을 파묻을 순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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