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내리·모량리 일원에서 통일신라 도시유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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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방내리·모량리 일원에서 통일신라 도시유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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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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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지 전경(사진제공-문화재청)



영남문화재연구원은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모량리 일원의 경주 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공사 구간 내 전장 1km에 이르는 철도노선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의 도로, 우물, 담장, 적심(積心)건물지, 제방시설 등을 갖춘 도시유적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도로는 폭이 5~8m로 총 10여 곳에서 확인되었으며, 모두 남-북, 동-서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도로에 의해 구획된 하나의 방(坊)은 120m×120m의 규모로, 방 내에는 담장과 우물, 적심건물지로 구성된 가옥이 조성되어 있다. 또 하천(大川)과 인접한 북쪽경계 지점에서는 길이 30m(동서로 계속 연결됨), 폭 5m의 석축제방이 발견되어 도시의 경계를 확인할 수 있다.



유물로는 다수의 수막새(蓮花文막새, 獅子文막새), 암막새(飛天文막새)를 비롯하여 고배(高杯), 인화문(印花文)토기, 청동접시, 수레굴대[車軸], 탑상전(塔像塼), 치미(鴟尾, 용마루 장식기와), 청동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이 유물들 중 우물주변 진단구(鎭壇具, 건물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서 지하에 묻는 매장품)로 이용되었던 청동접시의 바닥에는 “王”자가 새겨져 있다.



연구원 측은 “유적의 중심 시기는 도로에서 출토된 유물에 의해 8세기경으로 판단된다”면서, “도로와 건물지의 중복이 많고, 건물 조성 시 이용된 축성토에서 5세기의 유물이 다수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5세기경부터 마을이 조성되어 6세기, 7세기를 거쳐 8세기경에 경주왕경과 같은 도심으로 발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발굴지역 일대는 신라 6부의 하나인 모량부(牟梁部)의 옛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신라왕경으로 진입하는 서북방면의 주요 교통로이다. 조사지역과 인접하여 사적 제43호인 ‘경주 금척리 고분군(慶州 金尺里 古墳群)’이, 북쪽으로 5km 지점에는 사적 제25호인 ‘경주 부산성(慶州 富山城)’이 위치하는 등 역사·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이다.



그동안 방제(坊制)에 의한 도시의 조성이 경주시내에서만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조사 결과 외곽지역인 방내리·모량리 일원에서 도로에 의해 방형으로 구획된 도시가 확인되어 신라 왕도의 발달사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연구원측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가 ‘신라의 전성기엔 京中에 17만8936호, 1360방, 55리와 35개의 金入宅이 있었다’고 기술된 삼국유사(三國遺事) 진한조(辰韓條)의 기록과 1360방이 아닌 360방이었다는 현재 통설의 차이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이번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모량리 일원 유적에 관한 현장설명회는 12일 오후 2시에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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