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중인 흥선대원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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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중인 흥선대원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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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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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강력한 개혁정치를 실시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묘가 증손의 방치 그리고 남양주시 개발과 맞물린 입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1820~1898)은 1863년 제26대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신정왕후 조씨(철종의 모)에 의해
그의 둘째 아들(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어 대원군에 봉해졌다. 그 후 10년간 우리나라를 섭정했던 그는 안으로는 개혁을 밖으로는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실시하며 그의 정책과 관련한 찬반 논쟁이 후세에도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대원군의 묘는 원래 1898년 고양군 공덕리에 장사지냈다가 1906년 파주군 대덕리로 이장됐으며 다시 1966년 현재의 장소인 경기도
남양주시로 옮겨졌다.


관리인이 없다


현재 흥선대원군의 묘는 시도지정 기념물 제 48호로 지정돼있다. 1만평이 넘는 묘 전역은 흥선대원군 증손 개인소유로 되어있다.


흥선대원군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주변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묘를 찾아가는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취재팀은 몇 번의 갈림길을
헤매다 흥선대원군 묘를 찾았다.


힘들게 찾아간 흥선대원군 묘는 언뜻 보기에도 관리가 안돼 있었다. 안내판은 훼손돼 있고, 사적을 기리는 비석은 군데군데 깨져있었다. 묘로
올라가는 계단부위는 깨진 기와조각이 널려 있었고, 봉분에는 수풀이 무성히 자라 있었다.


또 흥선대원군 묘역에 있던 재실(제사를 지내는 곳)은 허물어져 있었다. 재실이 허물어 진 후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비석과 영락지는
애꿎은 돌덩이가 되어 그 자리에서 방치되고 있었다.


현재 흥선대원군 묘는 관리인이 없었다. 다만, 인근동네 노인정에서 묘역 부지의 땅을 빌려 경작을 하기 때문에 노인정에서 벌초만을 할 뿐이었다.




관리인의 부재와 관련, 남양주 시청 관계자는 “도지정문화재이지만 개인 소유부지이기 때문에 묘역 관리 문제는 건들지 않는다”며 “다만,
행정적인 문제에 관해서만 지도를 하고 있다”고 관리 부재의 책임이 없음을 밝혔다.


임병규 남양주시 향토사료관 관장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비석들이 현재 흥선대원군 묘 부지에서 관리 받지 못한 채 뒹굴고 있다”며 “비석들을
박물관으로 옮겨 교육 자료로 활용돼야 한다”고 박물관으로의 이전이 시급함을 시사했다.


묘역을 둘러싼 소문


방치 문제만큼이나 현재 흥선대원군 묘역을 둘러싼 입소문이 흉흉하다.


현재 남양주시 도시화 개발과 관련 ‘시도지정 기념물로 지정된 흥선대원군의 묘지만 제외하고 1만평이 넘는 부지를 팔려한다’는 소문이 남양주시
문화재 관련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또 ‘흥선대원군 묘역의 재실이 허물어진 후 그 자리에 있던 다수의 비석이 없어졌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 당시 재실에 있던 사라진 문화재의 자취를 쫓던 임병규 관장은 “아무도 사라진 문화재의 행적을 말해주는 이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와 함께 ‘문화재가 암거래로 팔린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남양주시 문화재 관련 인사들의 조심스런 추론이다.


직접적인 소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흥선대원군의 증손은 흥선대원군 묘와 관련한 문제에 관해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있는 상태이다. 취재팀 또한
관리인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증손과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임병규 관장은 “증손과 수차례 전화를 시도했지만 모두 무사로 돌아갔다”며 “이제와 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개발과 맞물려 떠도는 말과 문화재의 뒷거래에 관한 소문들에 관해 시원하게 얘기해줘야 할 당사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묘는 해괴한 소문과 함께 그의 증손과 정부의 안이한 문화재 관리방침에 의해 방치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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