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문화재칼럼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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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문화재칼럼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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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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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부처(覺者)란 말은 더없는 지혜로움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다. 내일, 부처님 오신 날은 이 지혜로움의 등을 환하게 밝힌 코타마 싯다르타가 세상과 인연을 맺은 것을 상징하는 날이다. 싯다르타가 정확히 사월 초파일날 룸비니에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루쯤은 고민하는 날이었으면 한다.
또한 종교인에게 귀의하는 날이 아닌 내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그런 날이었으면 한다.

생로병사,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죽는다는 것의 의미, 오십이 넘으니 이제 조금은 그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수천억의 재산도, 권세도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어쩌면 인간은 공히 평등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한없이 교만해졌을 것이고, 죽음이 없다면 악의 응징도, 선의 보상도 없었을 것이다.

종교로서 죽음을 인정하는 가르침은 싯다르타(부처)가 유일하다. 어떠한 사술도 없이 냉엄한 현실을 반영하는 참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오류를 범하고, 이 오류를 수정해가면서 나이가 들고 늙어 죽음에 이르는지도 모른다. 비록 어제의 잘못을 오늘도 자행하지만 다시금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것, 이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정화하고, 정갈하게 하는 노력, 그것 이외에는 각자(부저)의 가르침은 없다. 천만금의 재산도 인간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죽어 빈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불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는 존중의 의미도 새겨보아야 한다.

인간에게 티 없음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에게는 허물이 있다. 그 허물의 경중은 다르지만 우리는 그 모든 허물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불교 철학이 종교화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더러 있을 수 있지만, 그 깊은 중심부에 ‘겸손’이라는 도덕적 관념이 자리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은 다시금 부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불교를 뜻깊게 이해하는 날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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