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속에 빛나는 겸손한 발자취 '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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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속에 빛나는 겸손한 발자취 '오죽헌'
  • 관리자
  • 승인 2005.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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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땅은 기원전 오래전부터 예국에 속해왔다. 기원전 127년에는 창해군에,
기원전 108년에는 임둔군에 속했다. 기원전 30년 전부터는 동예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강릉은 940년에는 ‘명주’, 983년에는
‘하서부’, 986년에는 ‘명주도’, 995년에는 ‘삭방도’, 1178년에는 ‘창해명주도’, 그리고 1263년에 이르러서 ‘강릉도’라
불렸다. 충렬왕 때인 1298년에서야 ‘강릉’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강릉의 행정구역은 북쪽으로는 고성, 통천까지, 남으로는 울진, 평해까지, 서쪽으로 정선, 평창성까지 관활하게
되어 광대한 문화권을 형성하여 명실상부한 문화적인 중심체가 되어 종합적인 강화문화를 아우르게 된다.






오죽헌은 명실상부한 강릉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율곡 이이 선생이 1536년(중종 31) 탄생한 조선시대 상류주택으로서 별당 사랑채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익공 양식의 건축물이다. 율곡 이이 선생의 대쪽같은 성품이 느껴지는 굵직한 장대석 기단 모습에서는 의연함이 느껴진다.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두고 각 기둥 위에 둥근 도리를 얹었으며 지붕은 겹처마의 튼튼한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 정면에서 왼쪽 두 칸은 우물마루의 대청이며, 오른쪽 1칸은 뒤쪽 반간에
툇마루가 있는 온돌방이다. 측면 창호 문틀에는 중간 문설주가 있었던 자리에 홈이 파여 있어 오래된 가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대청 천장 위에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다른 부분은 연등천장으로 했다. 익공의 쇠서와 첨차의 부드러운 곡선은 오래된 옛날 기법을 따르고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화반은 주심포에서 익공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며, 지붕 처마를 높이 올려 일조와 통풍을 원활하게하고
있어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나무숲이 오죽헌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마치 율곡 이이 모자(母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오죽헌을 찾으면
우직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과 그 정갈한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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