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사적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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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사적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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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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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문신인 송은(松隱) 박익(朴翊) 선생의 묘(경남 밀양 위치)인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密陽古法里朴翊壁畵墓)’가 사적 제459호로 지정됐다.

지난 2000년 태풍으로 훼손된 묘역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벽화를 발견하고 문화재청에서 정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 가치가 새롭게 밝혀져 사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조선초 생활풍습의 연구와 고고학적, 회화사적 가치를 지니는 한편, 고려 말 문신인 송은 박익 선생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벽화 내부 모습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는 고려말, 조선초 선조들의 풍습과 옷차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분묘는 밀성 박씨 묘역의 능선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석인상 등을 갖춘 방형분으로써 그 규모는 봉분의 길이 가로 6m, 세로 4.8m, 높이 2.3m이며, 내부석실은 2.5m, 폭 1m, 높이 0.8m로, 내부석실 사방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는 화강암 판석위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먼저 검정선으로 벽화내용을 소묘한 뒤 마르기 전에 주요 부위를 적색, 남색, 흑색으로 채색하는 프레스코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부분적으로 퇴색되어 있으나 잔존부분에는 인물, 말, 도구 등 당시의 생활풍속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이 묘의 축조수법에서 주목되는 것은 수도(무덤길 형식)를 갖춘 방형묘라는 점이다. 방형묘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까지 일정 계층에서 유행한 묘제 중 하나이나, 남쪽으로 수도를 설치한 것과 병풍석이 경사지게 설치된 것은 특이한 경우다.

조선전기의 횡구식(세 벽만을 쌓고 한쪽 벽으로 드나든 후 밖에서 벽을 쌓아 막는 무덤 형식) 석실 중 수도가 확인된 것은 아직 없으며, 묘도와 구(溝)의 역할을 겸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양식상의 원류에 대한 검토 자료가 된다.


송은 박익(松隱 朴翊, 1332~1398) 선생은 휘는 익(翊), 초명은 천익(天翊),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 본관은 밀성의 고려말 문신이다. 고려 공민왕조에 문과에 급제했고 한림문학이 되는 등 고려말 왕의 팔은(八隱) 중 하나였다.










▶ 박익 벽화묘 출토 지석
박익 벽화묘는 단순한 학술자료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써 지니는 의미가 크다.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상실하지 않기 위한 철저한 보존과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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