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프랑스 군대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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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프랑스 군대를 물리쳤다!
  • 관리자
  • 승인 200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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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한다. 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전등사. 소중한 문화재와 슬프지만 자랑스런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는 사람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이것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3곳의 처마 밑에서는 두 손으로 처마를 들고 벌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비해, 한
귀퉁이의 것은 한 손으로만 처마를 들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벌을 받으면서도 꾀를 부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 선조들의 재치와
익살을 느낄 수 있다.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강화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적 감각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대들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이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하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 음의 장관을 이루었다고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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