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우물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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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우물을 아시나요?
  • 관리자
  • 승인 2005.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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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곶면 석정리 지명은 조선시대까지 통진현 고리곶면 읍정리였다.

이 곳 '돌우물'의 물맛이 좋아 통진현의 원 이 우물의 물을 길어오게 하여 식수로 사용하였는데 골(고을)의 우물 곧, '골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라고 하다 보니 그 이름이 전해져 주민들은 전래적으로 '골우물'로 불러왔으나,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와 역사적 의의를 말살하기 위해 단순히 의미만을 옮긴 '석정(石井)'으로 고쳤다.



이 '돌우물'에는 전설이 서려있다.



조선조에 김포 장릉(16대 인조의 부친으로 추존왕인 원종과 인헌왕후의 능)을 양주에서 이 곳으로 개장 하며 능을 역사(役事)할때, 광중(壙中)을 파니 많은 샘물이 솟구쳐 하관(下棺)을 할 수 없어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때 관리가 수맥을 따라 현 위치(당시는 갯벌이었다 함)에 도착하여 조그만 샘물을 크게 파헤치게 하니 돌틈에서 많은 수량이 솟구쳐나왔고, 그 결과 장릉의 광중에서 솟던 물이 멈춰 능역사를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1787년 무렵 옥과(玉果, 전라도 곡성군 소재) 현감이 우물 옆에서 살았었는데 방문객이 너무 많아 불편 하게 느끼던 차에 하인이, 시주를 하러 온 중에게 객이 안 오게 하는 묘방을 물으니, 우물 안에 있는 거북형상의 돌에서 그 머리를 깨어 버리면 된다고 하여, 그 말대로 했더니 출입객은 한산해진 대신 곧 그 집이 망해 버렸다고 한다.



오봉산은 이 마을의 기안역을 하는 주신의 원천이 서리어 있는 곳이다. 이 곳에는 옛날에 장사가 있었는데, 그가 이 우물에 내려와서 무릎 끓고 물을 마신 무릎 자국과 지팡이 자국, 소변을 본 자국이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이 우물은 전체가 돌로 되어 있는데 동남간과 동북간에 거북 형상과 용의 형상이 있고, 샘은 동북방간 오봉산 낭맥간방에서 솟는데 수량이 엄청나서 옛날에는 이 근방 못자리를 모두 꾸려나갔다고 한다.





지금 현재 돌우물은 김포시청의 관리소홀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인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있다고한다. 우물 주변에는 이끼가 심하게 끼여 식수로 이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석정리 주민들이 한달에 한두번씩 청소를 한다고는 하지만 주민들의 관리만으로는 돌우물이 보전되기는 힘들어 보였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더라도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문화적 역사적 의의를 잘 살리고 보존한다면 관광명소로써의 활용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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