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의 채석장, 국내 최초로 문화재 된다!
상태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의 채석장, 국내 최초로 문화재 된다!
  • 관리자
  • 승인 2019.07.23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천계곡 일대에서 발견 된 '사릉부석감역필기' 바위글씨>▲(사진=서울시청)


사릉 채석장, 구천계곡 일대에서 확인
인조 삼남 안평대군 별장 ‘송계별업’ 터도 함께 발견
한국산서회 회원들, 바위글씨 ‘사릉부석감역필기’ 로 찾아내


조선왕릉 조성 당시 석재를 채취한 채석장이 국내 최초로 문화재(시 기념물 제44호)가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중 사릉(정순왕후 릉)을 조성할 당시의 채석장이 강북구 수유동 구천계곡 일대에서 확인됐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되는 ‘사릉 석물 채석장’은 조선 왕릉 채석장의 소재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본래 사릉은 단종 비 정순왕후의 묘였으나, 숙종 24년(1698년) 단종이 복위되자 묘에서 릉으로 격상되면서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이 때 현재의 북한산 구천계곡 일대에서 석재를 채취하고 그 사실을 계곡 바위에 새겨 남긴 것(사릉부석감역필기)이다.

<채석장 관련 유적(백)><송계별업 관련 유적(황)>▲(사진=서울시청)

구천폭포 인근 바위에는 ‘기묘년(1699년) 정월(1월)’ 사릉을 조성할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관리들과 석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릉부석감역필기’는 사릉을 조성하는 과정을 기술한 사릉봉릉도감의궤(思陵封陵都監儀軌)와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던 조선 왕릉의 채석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산서회 회원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한국산서회는 오랜 기간 북한산 일대를 답사한 끝에 구천계곡 상류 바위에 사릉의 석물을 채취한 사실을 새겨 넣은 바위 글씨(사릉부석감역필기)를 발견했다. 이로 인해 조선 왕릉의 채석장이 공식적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능선을 따라 동서로 흐르는 구천계곡 일대는 조선 왕실의 채석장으로 일반 백성의 접근과 석물 채취를 금하는 표식 ‘금표(禁標)’와 ‘부석금표(浮石禁標)’가 새겨진 바위가 계곡을 사이에 두고 하류 남북 측에 세워져 있어 더욱 주목된다.

<송계별업 각자>▲(사진=서울시청)

뿐만 아니라 구천계곡 일대는 인조(仁祖)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이 1646년 지은 별장 ‘송계별업(松溪別業)’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송계별업에는 보허각(步虛閣), 영휴당(永休堂), 비홍교(飛虹橋) 등의 건축물이 계곡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외에도 ‘구천은폭(九天銀瀑)’, ‘송계별업(松溪別業)’ 등의 바위글씨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현재 송계별업은 현재 건물과 다리 등은 모두 소실되고 ‘九天銀瀑(李伸 書)’, ‘松溪別業(필자 미상)’ 바위글씨와 건물이 들어섰던 것으로 추정되는 터만 남아있는 상태다.

인평대군 사후, 그의 후손들이 1680년 역모 사건에 휘말려 축출되어 송계별업의 관리가 소홀해 지고, 구천계곡이 왕릉의 채석장으로 정해지면서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계별업’ 바위 글씨 바로 아래에 채석 관련 바위 글씨(사릉부석감역필기)를 남겼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기념물분과)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모두 인정하고, ‘사릉 석물 채석장’(서울시 기념물)과 ‘송계별업 터’(서울시 문화재자료)를 각각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로 의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는 서울시 지정문화재 제도를 만든 지 50년이 되는 해이며, 그 동안 600건의 문화재가 지정됐다”며, “향후 사릉 석물 채석장과 송계별업 터의 역사성과 가치를 더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과도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