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에서 한성백제 시대 도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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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에서 한성백제 시대 도로 발견
  • 관리자
  • 승인 200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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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도로 전경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백제 초기 도성인 사적 제11호 풍납토성에 대한 제1차
10개년 학술조사 추진계획을 수립,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475년까지 유지되었던 한성백제 당시에 축조된
도로, 대형 폐기장과 석축수로, 주거지 등 80여 기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또한 수천 점의 기와를 비롯하여 각종 토기류, 토제
초석, 철기류 등 수만 점에 이르는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 된 도로는 경주의 신라왕경, 한성백제 이후인 백제의 사비시기에 만들어진 부여, 익산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도로들에 비해 최소 200 ~ 300년을 앞서는 것이다. 또한, 너비 8m, 확인 길이 41m의 남북도로 1기와 이것이 교차하는
너비 5m 가량의 동서도로 1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초기백제의 유력한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내에서도 처음으로 확인되어 더욱
가치가 높다.







 








 



 








▶ 풍납토성 내 동서도로의 활석부







 







도로는 먼저 땅을 얕게 판 후 가운데 부분에 폭 5m, 두께 20cm 가량의 잔자갈을 가운데가
볼록하도록 깔아 노면을 조성하여 양 측면으로 빗물의 배수가 잘 될 수 있도록 축조하였다. 이처럼 노면에 자갈을 다져서 축조하는
방법은 많은 공력이 소요되는 것으로, 사비시기 부여의 궁남지나 관북리 유적, 익산의 왕궁리 유적 등의 도로에 아무 포장이 벗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풍납토성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이 도로들은 한성기 후기에 주거지나 수혈에 의해 일부가 파괴된 채로 조사되어
축조시기가 한성백제 시대에서도 비교적 이른 3세기 무렵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여러 석렬과 석축, 수로 등 이 시기 유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유구들이 도로와 함께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이른
한성기 시기, 이 일대에 중요한 시설물들이 함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풍납토성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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