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시대 최대 집단 취락지, 암사동선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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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최대 집단 취락지, 암사동선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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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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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선사주거지는 기원전 3000∼4000년경에 우리 나라





암사동선사주거지는 기원전 3000∼4000년경에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움집터
유적이다. 한 곳에 여러 채의 집을 지어 집단을 이루고 살았던 취락 유적이기도 하다.

 


이곳은 한강과 아차산성을 강 건너로 바라보는 대지 위에 자리하는데, 유적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25년에 큰비로 한강이 넘쳐 유적이 훼손되어 토기ㆍ석기 등의 유물이 드러나면서부터이다. 발굴은 1967년에 한국대학박물관협회의
연합 발굴이 있은 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조사하였고, 1984년 선사유적공원을 만들기
위한 집자리 복원 자료를 얻기 위해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다시 발굴한 바 있다.





 







 




사적267호 암사동 선사유적지

 




 






이 유적에서는 세 개의 문화층에서 20여 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최하층은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문화층으로 대부분의 주거지가 여기에 속한다. 중간층에서는 무문계 빗살무늬토기가 상당수 출토되어 빗살무늬토기에서
무문토기시대에 걸치는 과도기적 양상이 주목된다. 최상층은 백제시대문화층으로서 합구식 옹관묘(甕棺墓)와 건물의 적심석 등이
발견되었다.





 








 




유적지내에 있는 원시생활 전시관

 




 







이 가운데 신석기시대에 해당되는 빗살무늬토기문화층은 드러난 유물ㆍ유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
중서부 지방 신석기시대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두 20여 채의 신석기시대 움집터와 딸린 시설, 돌무지 구조
등이 드러났고, 여러 가지 무늬 토기, 석기 등이 발굴되었다. 움집 형식의 둥근집이 많으며 모를 죽인 네모꼴도 있다. 움집의
크기는 한쪽 길이가 5∼6m쯤이고, 깊이는 70 ∼ 100cm쯤 된다. 집자리 가운데에 돌을 둘러놓은 불땐 집자리가 있고, 입구는
남쪽에 있는 것이 많다. 기둥구멍은 집 한 채에 네 개가 있어 네 모서리에 기둥을 곧게 세우고 도리를 얹고서 서까래를 서로 기대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원시생활 전시관 내부

 





 






토기는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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