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ㆍ발해는 우리 역사”증거 찾아
상태바
“옥저ㆍ발해는 우리 역사”증거 찾아
  • 관리자
  • 승인 2007.08.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인물도






오늘 4월 6







 



 







▶ 옥저의 쪽구들







옥저에서 발해, 이후 한인 이주민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일맥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연해주에서
발굴되었다. 특히 옥저와 발해의 온돌이 한 유적 내에서 동시에 발굴되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인 온돌의 기원과 흐름을
통해 발해와 옥저가 우리의 역사임을 밝혀주는 자료로 주목을 받고 있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와 러시아 극동국립기술대학교 및 러시아 과학원 극동지소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 간 제5차 한·러 공동
연해주 발해문화유적 발굴조사단(한국측 단장 :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정석배 교수)은 2007년 6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우쑤리스크 북서쪽에 위치하는 체르냐찌노 5 발해 고분유적과 체르냐찌노 2 옥저·발해 주거유적에 대해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두 유적은 약 1㎞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다.



발굴조사단은 이번 제5차 조사에서 특히 체르냐찌노 2 주거유적의 발굴조사에 주력했는데, 이 유적은 지표면에는 한인 이주민들이
거주한 흔적이, 그 아래에는 발해 문화층이, 더 아래에는 옥저-끄로우노브까 문화층이 차례로 남아있어, 옥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발해(698~926년), 한인 이주민에 걸친 우리 역사의 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해주에는 이처럼 세 시기에 걸친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옥저인, 발해인, 한인 이주민이 모두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동일 민족으로서, 취락을 위한 자연환경과 입지조건을 보는 눈이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서로 비슷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 발해의 쪽구들







 





이번 체르냐찌노 2 주거유적 조사에서는 발해의 쪽구들(온돌) 1기와 다수의 생활
폐기물 유구, 그리고 옥저-끄로우노브까 문화의 주거지 4기와 토기가마터 1기가 각각 조사되었다. 한국 측 발굴조사단 단장인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정석배 교수는 이번 조사를 비롯하여 연해주 지역에 기원전후 시기의 온돌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며,
온돌이 고구려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존의 설보다 ‘옥저기원설’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또한 이번 발굴에서 발해의 온돌유적 바로 1m
밑에서 옥저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옥저와 발해 사이의 400년의 공백동안 말갈족이 이 곳에 거주하였으나 말갈족의 온돌 유적은
전혀 발견된 바가 없었음을 상기시키며, 이는 옥저-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온돌문화가 우리 고유의 문화임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옥저와
발해가 우리의 역사임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밝혔다.



발해의 쪽구들은 유적의 낭떠러지 부분에 위치하여 완전하지는 못하나 다행히 아궁이 부분 일부와 ‘ㄷ’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구들(연도)이 대부분 남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