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花匠, 종이로 꽃을 피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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紙花匠, 종이로 꽃을 피워내다
  • 임영은 기자
  • 승인 2020.04.14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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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 첫 번째

 

오늘날 대부분의 주요 행사에는 꽃이 빠지지 않는다. 학교 졸업식, 개회식, 장례식, 생일, 프러포즈 등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꽃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자 화훼농가의 매출이 40% 이상 떨어졌다는 보도를 통해서도 꽃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화를 제작 중인 불교지화장엄전승회 회장 정명스님 (사진 = CPN문화재TV)
지화를 제작 중인 불교지화장엄전승회 회장 정명스님 (사진 = CPN문화재TV)

 

- 가화의 등장, 저렴했던 지화의 보급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였으므로 가을과 겨울에는 꽃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로 인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가화가 등장한다. 가화는 금, , , 보옥, 종이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금과 은, , 보옥의 값비싼 재료 만들어진 가화는 왕실과 귀족층에 사용되었다. 일반 민가나 불가에서는 값싼 종이로 만든 가화, 지화가 일반적이었다.

 

가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백제 고이왕 28년 정월 초에 금화로 장식한 오라관을 쓰고 흰 가죽 띠에 검은 가죽신을 신고서 남당의 대청에 좌청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민가와 불가에서 주로 쓰인 종이꽃 지화는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쉬웠으며, 또한 당시 유행한 불가의 불살생사상으로 대부분 지화를 태워 부처에 공양했다. 지화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국교가 불교로서 연등회가 활발히 행해졌던 고려시대와 궁중행사나 일생의례가 활발했던 조선시대까지 지화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있다.

 

종이의 염색에 쓰인 천연 염료 (사진 = CPN문화재TV)
종이의 염색에 쓰인 천연 염료 (사진 = CPN문화재TV)

 

- 궁중에서부터 민가까지, 삶에 스며든 지화

 

지화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궁중에서의 연회, 무속에서의 의식, 민가에서의 크고 작은 잔치, 불가에서의 공양 등이다.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고, 천연재료로 염색을 해 자연 친화적인 우리만의 전통지화를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지화를 만드는 기법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데, 의식이 진행되고 대부분 버리거나 소각했기 때문이다. 전통지화는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오는 전승을 통해 후대로 이어져 왔다.

 

수륙제에 활용된 정명스님 제작 지화 (사진 = CPN문화재TV)
수륙제에 활용된 정명스님 제작 지화 (사진 = CPN문화재TV)

 

-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한 지화의 쇠퇴

 

현대에 이르러 화훼의 발달과 냉장기술, 공장의 대량생산이 늘어나면서 생활의 꽃들이 생화로 대체대면서 지화는 설 자리를 잃었다. 지화가 밀려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지화를 만드는 지화장과 지화가 쓰였던 문화도 등한시 되었다.

 

지화에 관련된 전해지는 기록도 적은 상황에서 점점 시행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어 자칫하면 그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는 시점이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했던 지화를 더는 못 볼 상황이 머지않아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요즘은 생화를 구하기도 쉽고, 공장에서 조화가 많이 나온다. 그것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이는 지화에 담긴 의미를 무시하는 행위다. 손으로 직접 본을 뜨고, 꽃잎 하나하나 자연의 재료로 염색하고, 하나의 꽃이 되기까지 수천 번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 지화다. 한 송이 지화가 수많은 꽃다발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서기까지 걸리는 헤아릴 수 없는 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5호 지화장 보유자 김은옥 (사진 = 문화재청)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5호 지화장 보유자 김은옥 (사진 = 문화재청)

 

- 지화, 문화재로 보호해서 전승해나가야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은 140항목에 달하며, 이중에는 지화가 필요한 항목도 상당수에 이른다. 무속 의식을 진행하는 굿, 불교에서 진행하는 수륙재와 연등회, 궁중의 제례악 등 사실상 지화가 빠지는 항목이 더 적을 정도로 지화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정작 지화만을 전문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무형문화재는 종목조차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인천과 경기도에서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정도로 맥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이조차도 각각 2013년과 2017년으로 얼마 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 무형문화재과 관계자는 현재 지화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의 일부로 2012년 지정되어서 보호받고 있다. 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로 연등회보존위원회가 인정됐다. 연등회라는 큰 범위 안에 지화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추가적으로 종목 지정 예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연등회에서  활용되는 지화 (사진 = CPN문화재TV)
연등회에서 활용되는 지화 (사진 = CPN문화재TV)

 

지화를 통해 의식을 진행하는 여러 무형문화재가 인정받고 보호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그 중심이 되는 지화가 단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게다가 지화는 불교, 무속, 일상생활, 잔치, 장례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어 온 전통문화다. , 종목 안에서도 여러 분야를 소집해 우리의 지화를 지켜나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서울시 역사문화재정책팀 정윤경 주무관은 현재 경기도와 인천에 전통지화가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었고 보유자도 각각 한 분씩 계신 것으로 안다. 서울시에서는 종목 자체가 없기 때문에 종목신청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그 후에 보유자분들을 공모한다. 신규 종목을 지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준비하고 검토해야 할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문화재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하고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다만,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전통성 있는 문화재가 지정되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것은 그야말로 뼈아픈 일이다.

 

현대의 시각에 맞춰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산을 재해석하고 평가하는 것도 중요한 때이다. 단순히 지화를 종이로 만든 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각 계층의 삶을 담아낸 거울로 바라봐야 할 것이 아닐까.

 

취재팀 임영은

lzs0710@icp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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